우리술 칼럼

새해맞이 도소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01-05
  • 조회수 5741

곰손 에디터의 좌충우돌 술 빚기 2탄 새해맞이 도소주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며 누구나 마음속에 몇몇 가지 바람을 품는다. 자신을 비롯해 사랑하는 모든 이의 건강과 행복, 짧게 아우르자면 그렇다. 나는 이루고자 하는 일에 게으름 부리지 않고 매일 조금씩 정진하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았다. 소소한 지킬 거리로는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 책 읽기 등 해마다의 새해 계획이다시 등장했다. 구체적인 목표치는 밝히기 곤란하다. 지키지 못할 약속 같아 수줍어서다. 술을 더 사랑하되, 그러니까 공부하고 알아가되 절제를 몸에 익힌다는 다짐도 해본다. 애정해마지 않는 음주생활을 더 슬기롭고 오래오래 일궈가기 위해서다. 이런 저런 다짐들이 난무한 가운데 드디어 새해 첫날 새 아침을 맞았다.   TV 앞에 경건하게 앉아 새해타종을 지켜본 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새해를 경축하는 술을 만들기 위해서다. 절주까지 선언한 마당에 신새벽에 술부터 찾다니, 그것도 만들어서까지 마신다니 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상황인가, 새해 계획은 이대로 또 무너지는 건가. 걱정과 비웃음은 접어두시라. 새해 아침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시는 술, 도소주(屠蘇酒)를 끓일 참이다. 도소주는 한자 그대로 풀면 ‘액운(蘇)을 물리치는(屠) 술(酒)’이다. 술이 끓는 동안 크고 작은 새해 다짐을 다시금하나 둘 꺼내본다. 한 해를 잘 살아가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올 한 해 건강을 기원하며 원샷! 나의 명랑한 음주생활은 대여섯 살 무렵 설날부터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차례상에 올린 술을 거둬 올망졸망 늘어선 손자손녀에게 음복을 권했다. 한 모금 들이키곤 잔뜩 찡그리던 사촌들의 표정은 아직도 선연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인생 첫 술의 맛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정종(正宗)’이란 이름으로 제사상에 오르던 귀한 술이 본디 일본의 것이라는 아픈 사실을 알고부터는 어린 날의 음복을 떠올리면 사케 특유의 달싸래한 맛이 연상될 뿐이다. 제보다 젯밥이다. 그때의 꼬마 사촌들은 음복 뒤 입안에 쏙 넣어주던 약과나 사탕에 더 신이 났다. 어른에게만 허락된 술을 나도 맛봤다는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할아버지는 손자 한 명 한 명 음복을 마칠 때마다 “올 한 해 건강해라”“공부 열심히 해라”“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는 덕담을 이어가셨는데,이 같은 술과 덕담의 향연은‘도소음(屠蘇飮)’에서 비롯한 전통이다. 도소음이란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둘러앉아 건강하고 무탈한 한 해를 기원하며 도소주를 돌려 마시던 설날 아침의 풍습이다. 도소주의 시작은 중국이다.한나라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華陀)가 처방했다는 설도 있고, 당나라 의학자 손사막(孫思邈)이 창시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당나라와 가깝게 지내던 신라 때 처음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려 때 집집마다의 설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1700년대 말 조선에서는 도소주를 미처 끓이지 못하면 차례상에 올린 청주를 물려 그대로 음복하며 ‘도소주’라부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연중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는 설날 아침의 도소주가 절기마다 나름의 술을 빚어 마시는 세시주 풍습의 시초라 기록하고 있다. 도소주를 만드는 법은 심상찮다. 일단 우물이 등장한다.그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벽사를 상징하는 붉은색 주머니에 길경, 계피, 천초, 백출, 오두 같은 약재를 채워 동네 우물에 담근다. 약재는 몸의 순환을 좋게 하고 기운을 돋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약재의 좋은 성분이 우러난 우물물은 마을 사람 모두가 나눠 마셨다. 다 함께 건강하고자 했던 그 시절의 공동체의식이 정겹다. 다음 날인 정월 초하루 즉, 설날 새벽에 약재 주머니를 건져 와 차례상에서 물린 청주를 붓고 끓이면 한 해의 액막이를 위한 도소주가 완성된다. 여러 차례 팔팔 끓이니 술기운은 기대하기 어렵다.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새해의 기원을 담아 경건하게 홀짝이는 술이니 그럴 만도. 도소주는 어린 아이도 한 잔을 거뜬히 비울 만큼 맛이 달고 순할뿐더러, 은근하게 배어든 약재 향기만으로도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술이다.     새해아침 도소주를 끓이는 마음으로 그리하여 나는,새해 벽두부터 도소주를 끓였다. 마시다 남은 냉장고 속 맑은술이 총동원됐다. 약재는 구하기 어려운 것은 건너 뛰고 집에 있는 계피와 산초, 나의 술 선생님 안진옥 원장님으로부터 나눠 받은 말린 도라지뿌리 정도로 가름했다. 초보 ‘주모’의 서툰 솜씨에 적합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든 셈이다. 아파트에서 우물물도 당치 않다. 그저 약재를 냄비 물에 담가 하룻밤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나 혼자 마실 술이니. 괜찮다. 외롭지 않다.아직 견딜 만하다. 약재가 우러난 물에 술을 쏟아 붓고 끓인다. 복닥복닥~ 술이 끓어오르며 내는 소리가 신나고도 정겹다. 지금 이 마음으로 2018년을 살아가리니. 새해 첫날의 각오를 한 해 내내 굳건히 이어가리라는 다짐,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바라는 기원,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고 복된 나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 앞을 지키고 섰다. 냄비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도소주처럼,산다는 건 올해도 여지 없이 부글부글 복닥거릴 테지만 말이다.    


STEP 1 약재와 청주를 준비합니다 도소주에 들어가는 약재는 시대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도라지뿌리 길경, 계피를 뜻하는 육계, 초피나무 열매로 산초의 닮은꼴인 천초, 삽주뿌리인 백출에 그 옛날 사약 재료로 쓰던 오두 말린 것을 조금 섞어썼습니다. 건강을 바라는 도소주에 독성 강한 오두를 넣은 까닭은 그 옛날 가장 무서운 존재였던 역병을 떨쳐내려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집에 있는 도라지뿌리, 계피, 산초로만 단출한 도소주를 끓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정확한 조제가 필요한 약은 아니니까요. 다만, 오두는 함부로 다루면 큰일납니다. 약은 약사에게~ 술은 맑은술 ‘청주’면 뭐든 좋습니다.     STEP 2 주머니에 약재를 담습니다 옛날에는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붉은색 비단주머니에 약재를 담았다지만, 요즘은 뭐 그렇게는… 설날 새벽에 도소주를 끓이는 노력만으로 스스로 대견할 따름인데요. 저는 제 술 선생님 진향술연구원 안진옥 원장님의 현대 도시생활에 맞춘 술 빚기 가르침에 따라 마트에 파는 육수용 삼베주머니를 활용했습니다. 준비한 약재를 주머니에 담고 입구를 야무지게 묶어줍니다. 다음 스텝으로~       STEP3 약재를 물에 담가 둡니다 요즘 우물은 천연기념물과도 같습니다. 우물물 대신 냄비물! 냄비에 약재주머니를 넣고주머니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줍니다. 약재의 향과 색, 좋은 성분이충분히 우러나려면 한 나절 정도는 기다려야지요. 그 사이 새해 계획을 또 끄적거려 봅니다. 2018년의 버킷 리스트가 약재 우러나듯 자꾸만 늘어갑니다.         STEP4 술을 붓고 팔팔 끓이면 끝! 저 같은 곰손에게도소주는 은혜로운 술입니다. 약재 우린 냄비에 술을 붓고 팔팔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니까요. 우르르 끓어 올리기를 몇 차례 반복합니다. 술기운이 날아간 자리에 약재 향이 배어들었습니다. 한 김 식혀 콸콸 마십니다. 원래는 아이도 어른도 입 모금만 했다지만요. 몸이 따습게 덥혀지며 2018년을 달려갈 에너지가 샘솟는 기분입니다. 새해, 모두 강건하시길.      

             

글 : 김미선기자 (<쿠켄> 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