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반주의 격조 - 송순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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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손 에디터의 좌충우돌 술 빚기 6탄
반주의 격조 - 송순주

 

 

술은 쌀, 누룩, 물만 있으면 담글 수 있다. 쌀은 찹쌀도, 멥쌀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찹쌀은 달고 보드라운 맛을, 멥쌀은 깔끔하고 드라이한 맛을 낸다. 찹쌀과 멥쌀을 섞어 둘의 장점을 조합하는 술도 여러 가지다. 여기에 산들의 꽃과 잎, 뿌리와 열매 등으로 개성적인 빛깔과 향취를 더할 수도 있다. 결국 쌀과 누룩, 계절 산물 몇몇으로 술이 되는 거다. 오호~ 단출하다.

 


술을 담그는 원리도 일견 복잡해보이지만 담박하게 정리된다. 먼저 쌀과 누룩, 물을 섞어 밑술을 담가 여기에 덧술을 몇 번 하느냐에 따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라 부른다. 덧술하지 않고 밑술만으로 끝내면 한 번에 담근다 하여 단양주라 한다. 덧술마다의 간격은 보통 3일에서 보름. 덧술 시기는 술 제법과 계절에 따라, 누룩의 활동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 단계의 발효가 완결되면 그 다음 덧술을 하는 원칙만큼은 같다. 초근목피와 열매 같은 부재료를 넣고 담그는 술은 이양주가 많다. 적어도 걸음마 주모인 내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덧술을 담글 때 부재료 그 자체나 우린 물을 섞어주면 끝. 술독에 안칠 때 말린꽃을 켜켜이 담아주는 것만으로 아리따운 빛깔과 풍미의 꽃술을 빚어낼 수도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목젓을 활짝 열어 제치고 마시기만 잘했지 지금 내 술상 위의 술이 어떻게 담가 저마다의 향취를 드러내는지에 관해선 무지하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호시탐탐 술을 빚어 주방을 아롱이다롱이 술독으로 채워가는 건 스스로도 신기하기만 하다. 술 빚기가 생각만큼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서다. 물론 요리가 그렇듯이 단출한 재료와 과정만으로 깊이 있는 풍미를 이끌어내는 게 진짜 내공이지만. 술을 빚는 굽이굽이 담기는 갖은 정성과 오랜 기다림, 심오한 발효과학의 세계를 차치하면 나 같은 ‘곰손 오브 더 곰손’도 이토록 빠른 시간에 프로 주모 엇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술을 빚고, 향유하고, 나눌 수 있다. 어렵지 않다. 도전해보시라. 새로운 술 인생이 열린다.

 


“쌀 8되를 깨끗이 씻어 하룻밤 담갔다가 가루 내어 되게 죽을 쑤어 식힌 뒤, 누룩 2되 8홉을 버무려 익혀 술밑을 마련하고, 송순은 숨이 죽을 만큼 삶아 식힌다. 찹쌀 4말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담갔다가 익게 쪄 다른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고, 술밑과 송순을 함께 버무려 넣는다. 달고 쓴맛이 들거든 소주를 찰랑하게 부었다가 술맛이 어울리면 먹는다.”

-조선 말 조리서 《시의전서》 중 송순주

 

송순주(松荀酒)는 이름 그대로 소나무순으로 담그는데 4월 무렵 돋아나는 보드라운 햇순을 쓴다. 멥쌀 죽으로 밑술을 담고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할 때 삶은 소나무순을 더해 발효한 다음, 소주를 붓고 마저 익힌다. 《시의전서》가 기록하고 있는 송순주는 곡물 발효주에 증류주를 더해 알코올 풍미와 도수를 높이는 혼양주(混釀酒)다. 발효 중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는 주정강화와인 포트(Port)와 같은 이치. 혼양주법으로 담근 송순주는 진한 송순 향기 그대로 곡주 특유의 부드러운 단맛은 한결 더 응축하고 있다. 여기에 화끈한 알코올 기세까지 더해지니 한 모금에 삼라만상을 경험하는 기분이다. 발효 끝에 첨가하는 증류주가 곡주의 보존기간을 늘려줘 냉장이랄 게 없던 옛날, 한여름까지도 그 술맛 그대로 향기롭게 취할 수 있었으리라.

 


송순을 따 다듬는 과정이 녹록치 않지만, 이양주로 담가 소주를 부어 마저 익히는 술 빚기 과정 자체는 도전해볼 만하다. 다행히 초보 주모의 송순주 사랑을 긍휼히 여긴 내 술 선생님이 잘 손질한 송순 몇 움큼을 나눠주었다. 송순주 도전! 올 여름에는 퇴근 뒤 마주앉은 술상에서 그윽한 솔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겠다. 우아한 흥취가 온 마음을 서늘하게 보듬어주겠다.

 

밑술 담그기
1 멥쌀 400g은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린 뒤 물기를 빼 곱게 가루 냅니다. 솥에 물 1.8L를 끓이다가 그중 1L를 덜어내 쌀가루에 부어줍니다. 2 주걱으로 잘 개어 쌀가루를 애벌로 한번 익혀줍니다. 3 나머지 끓는 물에 ②의 아이죽을 넣고 거품기로 멍울 없이 잘 풀어가며 끓입니다. 4 바닥이 눌어붙지 않도록 주걱으로 저어가며 된죽을 쑤어줍니다. 5 차게 식힌 다음 누룩 1.4kg을 가루 내 넣고 고루 버무려 술독에 안쳐 3일간 발효합니다.

 

 

덧술 담그기
1 봄에 새로 돋아난 송순은 굵고 연한 것으로 130g만 골라 물에 깨끗이 씻은 뒤 찜통에 쪄 한숨 가라앉힙니다. 2 찹쌀 1.6kg은 물에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렸다가 건져 고두밥을 지어 서늘한 곳에 두고 차갑게 식힙니다. 누룩 63g을 부숴 넣고 고루 버무립니다. 3 ②에 물 2.4L를 붓고 쪄낸 송순을 더해줍니다. 손으로 잘 버무릴게요. 4 발효를 마친 밑술을 과감하게 부어줍니다. 5 조물조물 버무려 물기가 자작하게 잦아들면 술독에 안쳐 3~4일간 발효합니다.

 

 

소주 더하기
《시의전서》 속 송순주는 발효주에 증류주를 더해 담그는 혼양주입니다. 덧술을 술독에 안쳐 거실에 두고 3~4일이 지나면 달고 쌉싸래한 맛이 나는데요, 이때 소주 1.3L를 붓고 마저 익힙니다. 술맛이 들면 걸러주지요. 보리차 같은 밝은 담황색에 신비로운 솔향기, 부드러운 감칠맛이 기가 막힙니다. 전이나 고기처럼 기름진 안주에 곁들이면, 저녁밥상의 반주로 함께하면 음식과 겉돌지 않으면서도 입안을 기분 좋게 정돈해주는 맛이 있습니다. 캬~ 최고! 참, 소주를 더할 때 초록색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는 아닙니다. 전통 증류식 소주를 부어야 송순주 고유의 깊고 고아한 향취를 해치지 않습니다. 기억하세요!

 

 

 

 

 

 

글 : 김미선기자 (<쿠켄> 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