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김형규 기자의 마시는 여행 (2) 한산 소곡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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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술’이라는 게 있다. 너무 맛있어서 한 잔, 두 잔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시다 보면 어느샌가 다리가 풀릴 정도로 만취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해 앉은뱅이라는 이름이 붙은 술이다.

특정 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아니고, 그만큼 술맛이 좋다 강조할 때 사용하는 비유법에 가깝다. 그런데 앉은뱅이 술의 원조라고 할 만한 술은 있다. 바로 소곡주다.

 

 

마셔보면 왜 소곡주를 앉은뱅이 술이라고 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소곡주는 달다. 한 잔 털어넣는 순간 달착지근한 맛이 혀끝부터 시작해 입안 전체를 묵직하게 채운다.

목구멍으로 술을 넘기면 바로 또 군침이 돈다. 어느새 손은 다음 잔을 따르고 있다.

어린애들이 사탕이며 아이스크림이며 종일 단것을 찾듯 소곡주에 맛들인 어른은 결국 딴 술병을 그 자리에서 비우게 돼 있다.

 

 

물론 술꾼들은 달기만 한 술보단 드라이한 술, 산미가 좋은 술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지나친 단맛은 건강과 효용을 따지는 요즘 미식 트렌드와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곡주가 1500년 전 백제시대부터 마셔오던 술이라는 걸 감안하자.

고춧가루도 마늘도 없던 때다. 설탕도 콜라도 모를 때다.

쌀로 만든 음료가 내는 진한 단맛이 조상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고 쾌락이었겠는가.

삼국사기엔 의자왕이 매일같이 궁녀들과 소곡주를 마시며 흥청망청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입장에서 백제 몰락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보다 부풀려 기술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당시 소곡주가 아무나 마실 수 있는 흔한 술이 아니었다는 건 분명해보인다.

 

 

다행히 요즘 소곡주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흔한 술이 됐다. 소곡주는 옛 백제 땅인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만 생산된다.

소곡주 특구로 지정된 한산의 소곡주 양조장은 70곳이 넘는다. 그중 한곳을 고르라면 ‘한산소곡주’다.

충남 무형문화재(1987년)와 농림부 전통식품명인(1999년)으로 지정된 우희열 명인(79)의 비법이 장남 나장연 대표(52)에게 이어져 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이 집 소곡주 특징은 전통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술 빚을 때 물을 더 넣어 요즘 입맛에 맞게 단맛을 제어하는 다른 집들과 다르다.

일반 청주보다 물을 절반만 넣고 다디단 술을 만드는 옛 스타일 그대로다. 그게 장기적으로 소곡주가 사는 길이란다.

 

 

나 대표에게 소곡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물으니 모시 전병을 꼽았다.

한산 특산품인 모시는 최근 차나 떡, 젓갈 등 식재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서천의 명물인 주꾸미나 전어도 소곡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금강에서 잡히는 봄철 별미인 웅어회도 소곡주에 곁들이면 좋다. 서천군 화양면 금강식당(041-951-1152)이 웅어회로 유명하다.

 

 

가을에 서천엘 갔다면 신성리 갈대밭은 필수 코스다. 6만여평에 이르는 광활한 갈대밭은 <공동경비구역 JSA>, <추노>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10월 중순부터 꽃을 피우는 갈대는 11월에 절정을 이룬다.

저녁 어스름 석양에 물든 갈대밭은 금강변의 철새들과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도 빼먹으면 섭섭한 장관이다.

 

 

 

 

 

 

 

 

경향신문 김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