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심현희 기자의 우리술 시음기] 가장 클래식한 것이 가장 트렌디하다. 이도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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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증류주의 조건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여러 술들을 탐닉해오면서 어느 순간부터 술맛을 내 기준대로만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세상엔 다양한 스펙트럼의 술이 정말 많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인생 최고의 한잔으로 기억되는 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내 돈 주고는 사먹지 않고 싶은 술로 각인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취향 존중’은 2020년대 소비 트렌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좋은 술의 기준이라는 건 늘상 존재하는 법이다. 시대와 취향을 뛰어넘어 좋은 술의 조건을 모두 갖춘 술은 그 자체가 해당 장르의 클래식이자 프리미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먼저 약주라면 단맛과 산미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증류식 소주라면 ‘알콜 도수를 느낄 수 없는 술’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감미료와 물을 잔뜩 섞어 알콜을 희석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알콜 부즈를 최소화하면서 소주 특유의 맑은 음용성, 부드러운 질감을 잘 살려낸 술이 좋은 소주의 표준이자, 고급 소주의 조건이라는 얘기다.

 


 ‘이도’를 처음 마셨을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잘 만든 소주의 표준이었다. 전통 증류식 소주’의 매력을 가장 클래식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살려냈다. 소주가 혀에 닿는 첫 느낌부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까지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깨끗하게 넘어간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기본을 잘 살리는 맛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한잔 한잔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25도부터 32도, 42도까지 도수를 올려서 천천히 음미해봤다. 이도에게 도수는 숫자일 뿐, 고도수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훌륭한 증류주다.

 


 이 술의 매력은 퀄리티 뿐만이 아니라 ‘트렌디’함까지 갖췄다는 것이다. 이도 소주의 탄생 스토리를 들어보면 프랑스에서 시작된 내추럴와인 열풍과 상당히 흡사하다. 프랑스 소규모 와인 생산자들은 대량 생산의 획일화된 와인 맛에 질려 “와인의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주의 운동을 통해 ‘내추럴 와인’ 붐을 일으켰다. 결국 클래식한 것이 트렌드가 된 케이스인데 ‘이도’ 또한 그렇다. 이 술을 만드는 경기호 대표는 “오래전 세종대왕이 현재 양조장이 있는 충북 청주 인근 백성들에게 내린 술이 어떤 것일까 궁리한 끝에 유기농 쌀과 전통 누룩, 초정리 광천수를 기반으로 한 전통 증류주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이 술을 ‘커피빈’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도 클래식과 트렌디함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은 아닐까.

 


 소주의 본연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한, 뛰어난 퀄리티의 상품을 만들어냈다는 점, 이도 소주의 존재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고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전통주 업계에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서울신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