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심현희 기자의 우리술 시음기] 술이란 무엇인가, 오매락퍽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1-31
  • 조회수 4956

 

 “술이란 무엇인가”

 종종 생각한다. 나는 왜 술을 마실까. 술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일까. 취하는 순간이 행복해서일까. 술이 맛있어서일까. 아니면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일까. 이런 저런 이유들이 떠오르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대체 술이란 무엇인가. 모든 애주가들의 마음 속에 있는 본질적인 의문을 꺼낸 이유는 배상면주가의 ‘오매락’을 시음하면서 술의 의미에 또한번 생각해보게 됐기 때문이다.

 

 귀찮은 것을 싫어해서 ‘앉은뱅이 술꾼’이 되었나 싶었을 만큼 ‘인풋’ 없이 가만히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령, 소규모로 다양한 장르를 양조하는 국내외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선 특별한 맥주를 개시할때 맥주가 담긴 통에 탭을 망치로 박아 넣어서 첫잔을 따라 마시곤 하는데, 어떤 귀한 맥주는 탭을 끼워 넣는 것 자체가 영광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매니아라면 너도 나도 이벤트를 직접 해보고 싶어하고 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 광경을 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이상하게 나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한번도 들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따라주는데 “왜, 굳이, 귀찮게” 라고 생각했다.

 

 배상면주가의 과일 증류주 ‘오매락퍽’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술을 마시려면 상자 안에 들어있는 미니 나무 망치로 술병을 감싸안은 퍽 토기를 직접 깨야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물론 토기를 깨는 것에는 “과거의 안좋은 일은 모두 잊고 행복의 기운을 받으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냥 좀 마시면 안되나 ”는 생각이 강했다.

 

 설날을 앞두고 ‘오매락퍽’을 마신 것은 솔직히 토기를 깨고 싶어서가 아니라 40도짜리 브랜디를 마시고 싶어서였다. 방에서 혼자 이 술병을 깨서 마시는 모양새는 좋지 않은 것 같아 가족을 불러 모았다. 고급스런 상자에 망치와 퍽 토기가 나오자 어색하고 조용했던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누가 깰래 ” 나와는 특히 어색한 사이인 아빠가 입을 열었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깨자”는 엄마의 아이디어에 따뜻한 안방에 모여 종이를 깔고 토기를 깼다. “이걸 깨면 새해에는…” “2020년에 나는…” 가족들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술병을 하나 놓고 술 한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평소에 좀처럼 하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퍽 토기의 절반이 깨졌고, 도자기 병을 꺼내 술을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매실, 배, 감 등 풍부한 과일향 덕분에 40도 만큼의 도수를 느끼지 못할만큼 부드럽게 넘어갔다. 뒷맛은 지나치게 달지 않아 여러 잔 질리지 않게 마실 수 있었다. 오고 가는 술잔이 늘어나는 만큼 대화의 농도도 깊어졌다. ‘귀찮은 술’을 집에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술은 대화의 매개체이며 인생의 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존재라고. 오매락퍽을 깨고 마시면서 술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사람의 존재감을 일깨워주는 존재이기도 함을 깨달았다.

 

 

서울신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