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김형규 기자의 마시는 여행 (7) - 제주 서귀포 시트러스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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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식업계 ‘신의 손’ 백종원이 한마디 하니 외면받던 전통주가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제주 감귤로 만든 브랜디 ‘신례명주’ 얘기다. 방송을 타면서 요즘 신례명주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단다. 백종원이란 이름 석자가 주는 파급력이 물론 컸겠지만 술 자체의 매력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신례명주는 몇 년 전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국산 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극찬을 받아온 술이다.

 

 신례명주는 제주에서 유명한 귤 산지인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141개 감귤 농가가 모여 설립한 회사 ‘시트러스’에서 만드는 술이다. 시트러스는 생긴 지 이제 5년이 됐다. 너무 크거나 작아서 상품성이 없는 귤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농민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만든 회사이다보니 애초에 양조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기간에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는 술을 만들게 됐을까.

 

 비밀은 초창기부터 양조를 진두지휘한 이용익 공장장이다. 이 공장장은 국내 주류업계의 전설 같은 존재다. 1975년 진로에 입사한 그는 줄곧 위스키만 담당했다. 당시는 외화벌이가 중요한 때였다. 정부는 위스키 수입을 줄이고 국산화하도록 기업들을 압박했다. 진로는 경기도 이천에 공장을 세우고 자체 제작을 시작했다. JR, 길벗, VIP, 임페리얼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국산 위스키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이 공장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위스키가 고급화되는 것처럼 소주도 값싼 희석식에서 점차 증류식 소주가 시장을 지배할 거라고 그는 1980년대부터 예상했다. 경제 수준 향상에 따른 자연스런 흐름이고 이웃나라 일본의 시장도 그렇게 재편되고 있었다. 회사를 설득해 만든 증류식 소주를 희석식 소주에 일부 섞어 출시한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1990년대 후반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IMF 사태와 함께 회사 주인이 바뀌며 히트상품도 순식간에 묻혔다.

 

 그가 만든 증류식 소주는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를 들여올 때 사용했던 빈 오크통에 담겨 긴 세월을 보냈다. 20여년이 지나 그가 회사를 나오고 난 뒤에야 장기 숙성을 거친 그 술은 ‘일품진로’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마니아들을 환호하게 만들었으니 뒤늦은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이 공장장은 서울대 농화학과 재학 시절 ‘개척농사단’이라는 서클 활동을 했다고 한다. 농촌에 보탬이 되겠다던 꿈을 그는 일흔을 넘겨 제주도에서 실현 중이다.

 

 가끔은 술보다 술에 얽힌 사람 이야기가 더 관심을 끈다. 이야기는 다시 술맛을 돋운다. 즐거운 상승작용이다.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욕하는 신례명주 술병을 볼 때마다 나는 술에 모든 걸 바친 이 공장장의 50년 세월이 떠오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촌스러운 술병이 달리 보인다. 구수한 오크향에 목넘김이 부드러운 술맛이 유난히 더 찰지게 느껴진다. 참고로 그 술병은 사드 사태가 터지기 직전 제주에 넘쳐났던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디자인이었다. 우리가 한 병이라도 더 신례명주를 먹어 없애야 근사한 새 술병을 빨리 볼 수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 김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