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슬기로운 음주생활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7-23
  • 조회수 2589

 

슬기로운 음주생활

 

 

계영배戒盈杯 :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

 

 

 

“술 잘 마신다는 사람치고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없다더라. 적당히 마시고 오거라.”

 

 

술 약속이 있어서 나갈 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때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하곤 했지만, 멈추지 못해 몸과 마음이 쓰린 적도 있었다. 때론 양껏 마시는 것은 멋진 일이다. 혈기왕성할 때의 특권일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폼 나게 마시고 싶다면, 호기로운 것과 치기 어린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인훈의 소설 ‘상도’는 조선시대 최고상인 임상옥에 관한 이야기다. 임상옥은 요즘으로 치면 조선의 제프 베조스 정도 일 것이다. 거상과 졸부의 차이는 돈의 양이 아니라 자본에 관한 철학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말이다.

 

 

소설 속 임상옥은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늘 ‘계영배戒盈杯’를 둔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을 가진 이 술잔은 실존했다고 한다. 사이펀의 원리가 담겨 있어서 7/10까지는 채워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을 채우면 아래로 모두 빠져 나가 버린다. 임상옥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잔을 보면서 과도한 욕심을 절제했다고 한다. 상인으로서 이익을 추구하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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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 계영배 :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여기에는 그와는 조금 다른 사람도 있다.

 

 

‘그 사내는 이름도 성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집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오류五柳선생이라 불렀다. 술을 좋아했지만 가난해서 늘 즐기지는 못했다. 친구들이 이런 처지를 알고 가끔 술자리를 마련했다. 선생은 술을 마실 때마다 다 마셔버리고, 반드시 취하고 말았다. 취하면 더 이상 그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고 바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갔다.’

 

 

도연명이 지은 오류선생전의 일부다. 거의 잊었겠지만, 학교 다닐 때 귀거래사의 작가로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글 속의 오류선생은 도연명 자신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즐기지 못하다가, 술자리가 생기면 취할 때까지 다 마셔버리고는 미련 없이 일어서서 가버린다. 정말 쿨하기 그지없는 애주가의 모습이다.

 

 

임상옥의 계영배와 오류선생의 음주는 얼핏 보면 서로 정반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둘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족함’을 알고, 미적거리거나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주량의 문제가 아니다. 하수는 술로 배를 채우고 뇌를 마비시키지만, 고수는 술을 통해 마음을 채우고 나눈다. 술도 마음도 넘치지 않아야 오래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경계를 알고, 즐길 줄 알아야, 폼도 좀 난다.

 

 

최근의 우리 전통주들은 개성으로 가득하다. 그 맛은 물론 이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까지. 팔색조 같은 전통주들을 즐기다보면 함께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술을 빚은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마시는 것 같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술과 다른 전통주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만족스럽다’의 ‘족’자는 바로 ‘足발:족’ 라는 것이다. 흡족하게 마시되, 내 발로 멀쩡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즐기는 것이 슬기로운 음주생활의 첫걸음이자 핵심일 것이다.

 

 

 

 

글  김형찬 한의사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