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약주 한잔하실래요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8-21
  • 조회수 6419

약주 한잔하실래요

 

 

 

“약주 한 잔” 하면 왠지 술자리의 평균연령이 꽤 높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세법을 떠나 ‘약주’란 말이 웃어른이 마시는 술을 지칭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원래 약주란 단어에는 맑은 술, 약이 되는 술 그리고 약초를 넣어 빚은 술이란 의미도 담겨있다.

 

‘술:주酒’자 앞에 떡 하니 ‘약:약藥’자를 붙인 마음은 어떤 것일까

 

‘과하면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맛과 향 그리고 음주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왕 마시는 것, 건강도 살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어쩌면 ‘약주’란 단어는 인간이 가진 상충되는 욕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약주는 특정 효능이 있는 약재를 증류한 소주에 담가 우려내고 숙성시켜서 만든다. 감홍로와 이강주와 같은 술이 대표적이다. 배합된 약재들에 따라 술의 맛과 향 그리고 효능이 결정되는데, 술에 더해지는 약재의 조합은 일종의 처방전이라 할 수 있다. 술에 더한 처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효능 너머로 술을 빚고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때부터 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유혹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감홍로를 예로 들어보자. 달고(甘) 붉은(紅) 이슬(露)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평양의 소주 감홍로에는 용안육, 계피, 감초, 자초, 방풍, 정향, 진피 그리고 생강 등이 들어간다.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들도 있지만 동남아와 몽골, 신강 등지에서 나는 약재들은 조선시대에는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약재들의 특징은 좋은 향과 따뜻한 성질 그리고 위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달콤하고 붉은 이슬이란 이름만큼이나 감홍로는 매우 귀한 술이었다.

   

이기숙 명인의 감홍로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라벨 사용)

 

 

감홍로는 평안도 지방의 토속주다. 우리가 즐겨 먹는 평양냉면이 이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좋은 술과 해장에 효과적인 냉면이 발달한 것을 보면 과거 평안도의 생활수준이 꽤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팔도 중 인심이 가장 후하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평양은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고, 고려 때도 서쪽의 수도라는 지위를 가질 정도로 발달한 곳이었다. 구하기 힘든 약재들로 술을 빚은 것은 풍부한 물산과 문화의 힘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차별이란 아픔을 겪게 된다. 성질이 따뜻하고 단맛이 나는 약재들로 만든 술인 감홍로는 평양사람들이 추운 기후를 이겨내도록 힘이 되었을 것이고, 향이 좋고 소통을 돕는 약재들이 차별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감홍로를 바라보면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감홍로를 즐길만한 지배계층의 이야기였겠지만 말이다.이처럼 전통적인 약주는 그 술이 기원한 지역의 자연과 문화적 환경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한다. 특정한 집안에서 전해 내려왔다면 그 집안사람들의 체질이나 질병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떤 술이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그럼 지금의 우리 시대의 약주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최근에는 마시기 편한 막걸리부터 도수가 높은 소주까지 약재가 들어간 다양한 술이나오고 있다. 술에 배합되는 약재들도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홍삼, 능이버섯, 개똥쑥부터 고수씨, 쥬니퍼베리 같이 특이한 재료들도 사용되고 있다. 보다 가볍고 캐주얼한 변신을 통해 젊은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개성 있고 맛있는 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새롭고 멋진 전통주들의 등장을 보며 한 가지 더 욕심을 내본다. 겉모습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 시대의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것이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욕심이겠지만, 한 잔의 술로 몸의 소통을 돕고, 불안한 마음을 사르르 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과거의 유산을 새로움 속에 담고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술. 이런 술이라면 매일 벗에게 청해 약주 한 잔을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글 : 김형찬 한의사 /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

 


김형찬 한의사는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며 느끼고 생각한 사람과 병,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동네한의학'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중입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요즘 사람들에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