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 [탁PD의 우리술로드] 경기도 안산 대부도 '그랑 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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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09-04
- 조회수 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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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대부도 '그랑 꼬또'
탁PD의 우리술로드
그랑 꼬또(Grand Coteau)는 프랑스어로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그랑 꼬또 와이너리는 클 대(大), 언덕 부(阜)자를 쓰는 대부도에서도, 볕 잘 드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얼핏 이름만 들어서는, 용산을 ‘드래곤 힐’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도에 프랑스 이름의 와이너리가 들어서게 된 것에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농협을 퇴직하고 고향인 대부도에서 포도 농사를 짓던 김지원 대표(55)가 지역의 포도농가들과 뜻을 모아 와인 생산에 나선 것이 2000년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당연히 대부도의 주력 생산품인 ‘캠벨 얼리’(Cambell Early) 품종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대부도 와인을 만드는 의미가 없었을 터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먹는, 포도 하면 딱 떠오르는 캠벨 품종은 엄밀히 말하면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가 아니다. 껍질이 얇은 캠벨 포도는 잡은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톡’하고 과육이 튀어나온다. 그만큼 먹기에 편하다. 또한 한 알 한 알의 알맹이가 커서, 입에 넣을 때 충만감이 있고 과즙도 풍부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와인을 만들 때는 모두 단점이 된다.

* 이미지 출처 : 그랑꼬또 와이너리(그린영농조합) 홈페이지
레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껍질에 들어있는 탄닌(포도나 감을 먹을 때 떫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성분. 와인을 상하게 만드는 미생물이 쉽게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부제 역할도 한다.)이 매우 중요하기에 알맹이는 작고 껍질이 두꺼운 포도가 유리하다. 또한 당도 면에 있어서도,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식용 포도보다 훨씬 더 달다. 알콜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당이 더 풍부하므로 효모의 활동이 더 활발히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높은 도수의 술을 얻을 수 있다.
껍질이 얇은 캠벨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난관이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우리가 흔히 마시는 와인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캠벨 포도에는 상당히 독특한 향이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포도 냄새’로 각인되어 버린 너무나 익숙한 향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전형적인 포도의 향과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이런 독특한 향이 나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을 때, 이것이 와인 범주에 속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설득해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애당초 ‘그린영농조합’이었던 법인명과는 별도로, ‘그랑 꼬또’라는 프랑스어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랑 꼬또’는 여전히 ‘큰 언덕’, 즉 ‘대부(大阜)’다. 어느 나라 이름으로 불리던 그 안의 본질은 한결같다는 의지가 읽히는 네이밍이다.
생산시설과 체험시설, 전시장이 갖춰진 와이너리 내부는 현대적이고 쾌적했다. 한쪽 벽면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각종 와인의 실물과 함께, 지역별 브랜드와 그 재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지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랑 꼬또 와이너리 전시장>
“우리나라에만 벌써 100~120여 군데의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산하는 와인 품종은 300여 가지가 넘고요. 아무래도 지역의 특산 과일들을 가지고 와인을 만드는데, 예산에서는 사과, 세종은 복숭아, 문경은 오미자, 사천에서는 다래 와인이 생산됩니다. 가장 큰 와인 산지는 충북 영동군이고요, 이 곳에만 50 곳 넘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우리 그랑꼬또는 안산 대부도에서는 유일한데, 단일 와이너리로서는 꽤 큰 편입니다.”
마케팅을 맡고 있는 김한식 대리의 설명을 들으니, 국내에 생각보다 토착 와인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실감이 났다. 단 맛이 나는 과일이라면, 이론상 어떤 것이든 와인으로 만들 수가 있다. 사실 과일은 곡물보다 술을 빚기에 더 쉬운 재료다. 껍질 부분에 술을 만드는 미생물인 효모가 붙어 있고, 내부에 알콜의 주 원료인 당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만 만들어 주면 쉽게 발효가 일어난다. 내부의 전분을 ‘당화’라는 과정을 거쳐 당분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고, 외부에서 효모균을 인공적으로 배양해 투입해 주어야 하는 곡물 양조주에 비하면 몇 단계의 수고를 더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포도는 수분의 함량이나 과실의 단단한 정도가 적당해 으깨기 쉽고, 일단 으깨 놓으면 껍질의 효모 때문에 바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과실 중에서도 술을 빚는 데 사용된 역사가 가장 길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조지아에서 8천년 된 와이너리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와인의 역사에 우리가 새로운 챕터를 보태기 시작한 역사는 일천하다. 아무래도 곡물 양조주 위주로 술 문화가 발전하다 보니, 18세기에 와서야 밥과 누룩을 섞은 것에 포도즙을 첨가해 술을 빚은 기록이 나타날 뿐, 딱히 서구의 와인에 해당하는 과실주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증류주에 과실을 담가 만드는 침출주가 있었지만 그것은 과실 자체의 당을 이용해 만드는 과실 양조주는 아니니 논외로 해야할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장을 안내하며 김 대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곳이 생산공장입니다. 1만리터 용량의 발효탱크 다섯 개와 동일 용량의 숙성탱크 다섯 개가 있습니다. 1만 리터면 한 탱크당 750ml 병 1만3천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용량입니다.”
생산공장을 둘러보다 보니 이곳에는 보통 와이너리하면 떠오르는 나무통이 즐비한 모습이 보이질 않아 그 이유를 물었다.
“모든 와인에 오크 통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을 써야 하는 스타일의 와인이 있는 거죠. 오크는 도토리과의 열매를 맺는 참나무 종류잖아요.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 자체에 떫은 맛을 가지고 있죠. 당연히 와인을 떫게 만들고, 나무 향의 풍미를 더해 주죠. 외부와 숨을 쉬면서 다양한 부케(와인의 숙성 과정에서 더해지는 향)가 생기게 해주기도 합니다. 스테인리스는 그런 작용은 없는 반면에 밀폐용기이기 때문에 과일의 특성이 지속적으로 와인에 흡수되도록 해줍니다. 저희는 ‘캠벨 얼리’나 ‘청수’처럼 껍질을 먹어도 씨앗을 먹어도 떫은 맛이 없는 품종을 가지고 만들기 때문에, 오크통을 써서 떫은 맛을 내는 것보다는 과일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프레시한 와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그랑꼬또 와이너리(그린영농조합) 홈페이지
전시장 한 켠에 차려진 테이블에 그랑 꼬또에서 생산중인 와인이 놓였다. 시음의 첫 순서는 요즘 물량이 없어서 1인당 두 병으로 판매제한을 두고 있다는 화이트 와인, ‘청수’였다.
“이 와인은 품종명을 그대로 레이블화 했습니다. 청수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1993년 개발한 포도 품종입니다. 양조용 포도와 식용 포도를 교배해 만든 하이브리드 품종이죠. 식용 포도의 달콤한 향과 양조용 포도의 충분한 산미, 그리고 밸런스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재배까지 저희가 직접 하고 있어요. 작년(2019) 빈티지는 청와대 만찬주에 두 번이나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그랑꼬또 와이너리(그린영농조합) 홈페이지
사실 청수 포도는 씨가 거의 없고 병충해에 강해, 농촌진흥청에서 식용 포도로 보급한 품종이지만 과일이 익을수록 알갱이가 땅에 떨어지는 ‘낙과’가 많았다고 한다. 맛만큼이나 모양새도 좋아야 하는 식용 과일로는 큰 단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적절한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양조용으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아, 최근에는 재배면적이 더 늘어나고 있다. 식용작물을 재배하는 농업과, 외관상 다소 문제가 있는 작물을 가지고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농산물 가공업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사례다.
청수의 향은 달콤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살짝 매정할 정도로 드라이하게 떨어진다. 아마도 입 안에서까지 그 달콤함이 이어졌다면 뭐, 그저 그런 인상의 술 정도로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 안에서 일어나는 그 작은 반전이 이 술을 드라마로 만든다. 어릴 때, 포도를 먹다 먹다 물려서 장난을 친 적이 있다. 포도알 몇 개를 껍질만 계속 까서 잔에 모은 후에 그걸 한 입에 후루룩 털어 넣었던 것이다. 청수 와인에서는 그 때의 느낌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청수 와인은 매해 만드는 법을 약간씩 달리해 가며 아직도 진화해 가는 중이다. 조금 더 기다리면 오크통에서 숙성된 청수 와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시음한 와인은 대부도에서 가장 흔한 캠벨 얼리 품종으로 만든 ‘그랑 꼬또 로제’다. 잔을 코에 가져다 대자 마자 우리가 알던 포도 향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껏 와인에서는 맡아 본 적이 없는, 집 앞까지 찾아온 포도트럭에서 나는 향이었다. 너무나도 친숙하고 그리운 여름의 냄새가 잔 안에 머물고 있었다.

* 이미지 출처 : 그랑꼬또 와이너리(그린영농조합) 홈페이지
“이 와인은 2013년 빈티지인데 2018년에 들어서야 병입했습니다. 탱크 속에서 5년을 머물렀기 때문에 숙성된 과실의 향을 잘 머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닭발 같은 매콤한 음식 먹을 때 이 와인이 잘 어울리더라고요. 가을에 대부도에 새우가 많이 나는데 새우에 초장 찍어서 함께 먹으면 딱입니다.”
김 대리가 뭔가 ‘잘 삭은 짚단 속의 트뤼프 향’이나 ‘히코리 나무에 끼운 연필심의 맛’ 같은 것들을 예로 들었으면 조금 덜 부러웠을 텐데, 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나 알겠기에 시장함을 동반한 괴로움은 더해만 갔다. 하지만 시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다음에 드실 것은 ‘그랑 꼬또 레드’입니다. 역시 캠벨 레드로 만들고, 발효 중에 과일 껍질과 씨앗 같은 것들을 다 같이 탱크 안에 놓아 둬서 맛이 훨씬 복합적입니다. 레드와인이긴 하지만, 로제 와인처럼 오크 통을 쓰지 않고 스테인리스 탱크만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의 레드와인 맛에 익숙한 분께는 오히려 이색적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그랑꼬또 와이너리(그린영농조합) 홈페이지
김 대리의 이야기처럼 그랑 꼬또 레드는 일반적인 레드와인보다는 훨씬 가볍고 깔끔했지만, 로제 보다는 좀더 다층적인 레이어가 느껴졌다. 처음엔 드라이했지만 끝에 희미하게 달콤함이 올라왔다. 그리고 껍질에서 우러났을, 떫지 않은 무게감이 입 안을 채웠다. 여름 밤, 모기향을 피워놓은 방 안에서 주말의 명화를 틀어 놓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먹던 포도의 기억이 머릿속에 소환되었다. 프랑스나 이탈라아 시골에서 만든 와인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는 시각적 링크였다. 물론 그 동네 사람들은 자기 동네 와인을 마시면 뭔가 비슷한 것들을 떠올리겠지만.
“스테이크나 고기만 먹을 때엔 탄닌이 있는 레드와인이 어울리지만, 우리나라에선 항상 고기도 김치와 같이 먹잖아요. 탄닌이 너무 세면 김치와 상극인데,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드라이한 와인은 김치와도 잘 어울립니다.”
김 대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와인은 캠벨 얼리로 만든 ‘그랑 꼬또 화이트’ 와인이었다. 적포도 품종인 캠벨 얼리로 만든 ‘화이트’라니 호기심이 더 생겼다.
“만드는 과정으로 보자면 로제와 비슷한데, 로제 와인보다 훨씬 더 일찍 과피(껍질)와 씨앗을 분리해 버리고 순수한 주스만 남겨서 발효시킨 겁니다. 그렇다 보니 로제에서 느껴지는 산미 같은 것도 좀 덜하고, 여름에 맥주처럼 시원하게 마시기 좋은 가볍고 편한 와인이 되었습니다.”
잔에 담긴 와인은 화이트라고 하기엔 살짝 짙은, 연갈색의 컬러를 띠고 있었다. 코에서는 우리가 알던 그 포도 트럭의 냄새가 느껴졌고,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무의식 중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랑 꼬또 화이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다. 레드, 화이트, 로제를 따지기 힘든 와인, 그러면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포도가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순수한 맛을 내는 술이었다. 소쿠리째 옆에 놓고 무심히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과육을 빨아들이고, 씨를 뱉기를 반복하는 유년시절부터의 경험이 그 한 잔에 담겨 있었다. 문득 이 화이트 와인은 육류 요리와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박김치네요. 이건.”
“아,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나박김치. 식전에 애피타이저로 사발째 쭉 들이켜든 기름진 고기 한 점을 먹고 한 모금으로 목 안을 정리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하는 우리 식탁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그랑 꼬또의 화이트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기에 제격이었다. 1892년 미국에서 탄생한 이래, 1908년에 한국에 건너와 1954년부터 대부도에 터를 잡고 자라기 시작한 캠벨 포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그 맛과 향 때문에 캠벨을 우리의 ‘토종’ 포도라고 말하는데 큰 위화감은 없다. 지금껏 외국의 땅심을 빨아먹고 자란 포도로 만들어진 술을 ‘배우는’ 것이 우리가 와인을 소비한 이력이었다면, 이제는 마시자 마자 어린 시절의 개인적 기억이 소환되는 와인을 가져도 좋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번 대부도 행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와인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밭을 보러 나가셔야죠.”
김 대리가 재촉했다.
“그리고 나면 저희 아버님이 술상을 봐 놓고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아버님이요 ”
“네. 여기 대표님이시죠.”
어디선가 삼겹살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포도 향에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 』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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