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막국수와 냉면, 그리고 술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10-30
  • 조회수 2593

 

 

 

 

 

 

막국수란 참 정의하기 어렵다.


 

평양을 비롯한 이북지역의 메밀냉면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경계가 불분명하다. 둘 다 본질적으로 메밀국수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 외로는 동치미육수를 주로 쓴다는 정도의 공통점이 있다. 양념이며 고명이며 하는 것들은 다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막국수보다 냉면이 상당히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개별 점포의 유명세와도 관련이 큰 문제겠지만 유명 평양냉면집의 경우는 한 그릇 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제는 대개 돈 만원은 넘게 받아야 뭔가 실력도 자부심도 있는 집이겠구나 하고 짐작하는 정도다. 반면 만 원 넘는 막국수는 강원도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이건 개별 업장의 문제라기보다 쟝르 자체의 인지도와 수용도의 문제다.

 

대체로 벼농사 짓기엔 너무나 척박하고 추운 산지에서는 반대로 메밀은 수월하게 짓는 편이라, 다시 말해서 막국수라는 것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엔 어디나 있다. 그래도 막국수라면 역시 강원도 음식라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3년째 강원도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좀 괜찮다는 막국수집들은 어지간히 둘러보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도 안 나오는 시골 막국수집들 중에서 전국구 실력의 맛집들도 많이 건져올렸다. 그러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평양냉면과 막국수의 차이, 혹은 막국수만의 정체성 같은 것이었다. 면발은 어쩌고 국수는 어때야하고 하는, 실제 평양은 가본 적도 없는 전문가들의 논평과 훈수가 문법으로 굳어지고 있는 냉면에 비해서 막국수란 어쩌면 그 자유도가 높은 점이, ‘창의성이 특징인 메밀국수라는 것’이 정의는 못 되어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인지는 모르겠다.

 

 

 

 

막국수 마니아라면 가봐야 할 홍천의 '과수원 막국수'

 

 

 

 

 

막국수는 프로토타입에 대한 생생한 증언 자료는 많이 있다.


 

얼마 나지도 않은 쌀을 다 털어먹은 겨울날 강원도(와 다른 춥고 산 높은 고장들) 사람들이 해먹던 음식으로서의 막국수 이야기다. 잘 뭉치지도 않는 메밀가루를 어찌해서 반죽을 해도 칼국수같이 썰어낼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이 체중으로 누르는 국수틀을 통해 뽑아 바로 뜨거운 물에 투하하여 익으면 건져낸다. 김이 무럭무럭 이는 국수에다가 묻어둔 장독대에서 떠낸, 반은 얼음인 동치미국물을 부어 말아먹는 천하별미는 아직도 산촌에서 살아온 노인들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아직도 마을을 뒤지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구석에서 이럴 때 쓰는 국수틀(평양냉면 국수틀과 놀랍도록 닮은)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좌)일본 니가타, 중간의 녹색라벨 병이 '경월소주' (우) 프리미엄 메밀소주 '메밀로'

 

 

 

 

이 때 어울리는 술은 거의가 소주, 아직 강원도 독자브랜드로 살아있던 시기의 경월소주였다고 한다. 이 경월소주 브랜드는 지금은 한국에선 유통이 안 되지만 일본에선 오히려 상당한 인기가 있어서 각 주점은 물론이고 편의점 같은 대형 유통점을 통해서도 팔리고 있다. 일본에 갔다가 여기저기서 경월소주를 발견하고 놀랐다. 나름 흐믓한 일이긴 한데,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비해서 술의 질 자체는 옛날 그 시절보다 좋아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괜찮은 막국수집을 만나면 반주로 최고급 메밀소주 한 잔 정도 곁들이고 싶다. 냉면에 비해서 대접 못 받는 막국수를 위한 의미도 담아서 말이다. 강원도 홍천의 두루양조장에서는 메밀소주를 만든다. 이곳은 술을 빚는 쌀, 밀, 메밀을 전부 직접 농사를 짓는다. 먼저 향기로운 청주를 빚고 그 술을 증류해서 만든다. 메밀의 멥싸한 개성이 톡톡히 느껴지면서도 신기하게도 부드러운 술이다. 45도와 25도의 두 가지 버젼이 있는데 메밀국수에 동치미와 함께라면 역시 45도 버전이 제격이다. 한 병에 20만원쯤 하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다고 그럼 상상만 해도 되고 말이다.

 

 


 

 

글: 백웅재 작가 / 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