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 온기를 담은 술, 모주와 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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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0-11-27
- 조회수 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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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과 소설 절기를 지났지만 아직 마음 속 가을을 보내지 못한 요즘. ‘스산하다’는 우리말은 이 시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담아낸다. <보리 국어사전>에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이나 분위기가 쓸쓸하다.’, ‘날씨가 으스스하게 흐리고 서늘하다.’
날씨는 겨울에 비해 온화하지만, 매일 조금씩 짧아지는 해의 길이는 우리를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간다. 겨울의 밤이 깊고 맑다면, 늦가을의 밤은 쓸쓸하고 서늘하다. 이 차가운 습기를 몰아낼 따뜻한 무엇이 필요하다.

출처: 픽사베이
지금은 모든 것이 과해서 탈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자연이 내어주고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이 귀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알뜰하게 먹었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도 쓰임이 다 할 때까지 자체 재활용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비하면서도 마음이 헛헛한 지금과는 분명 조금 달랐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아랫목에서 설탕을 섞은 술지게미를 나눠 먹고는 깔깔대고 웃던 누나들과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술을 다 걸러내고 남은 지게미였지만, 약간 남은 술기운과 아랫목의 온기와 시답잖은 농담들이 그 웃음의 이유였을 것이다.
모주와 콩나물국밥 출처) 모주:전주주조공식홈페이지 콩나물국밥:픽사베이계절에 한 번쯤, 가족들과 전주 콩나물국밥집에 가면 모주를 한 숟가락 얻어 마시곤 했다. 달달하고 향긋한 그 맛이 좋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우습게 보다 취한다고 하셨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콩나물국밥과 선짓국에 넉넉한 웃음을 더해 모주를 맛깔나게 마시던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의 눈에도 생기 넘쳐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 아니었다 싶다.
지금도 가끔 같은 집에 가지만, 국밥도 모주도 이전 같지 않다. 뭔가 희미해진 느낌이랄까. 그래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국밥에 시원한 모주 한잔을 곁들이면 마음 한 구석이 뜨끈해짐을 느낀다.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과 대추, 감초와 계피와 같은 약재를 넣고 끓여서 만든다. 끓이는 과정에서 알코올은 날아가 술기운은 연해지고, 약초의 맛과 향을 품는다. 속을 편하게 하고 몸을 덥히고 기혈의 순환을 돕는 약재들은 막걸리와 어울려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몸을 훈훈하게 한다. 모주의 모는 ‘어미: 모母’인데, 자식이 몸이 상할까봐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모주를 마셨을 때의 따뜻함과 편안함이 마치 엄마 품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스산한 계절에 모주를 만들어 식구들과 혹은 가까운 이들과 나누어 보면 어떨까. 코로나 사태로 불안하고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위안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막걸리에 마음에 드는 약재들을 더해 나만의 모주를 만든다면,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뱅쇼
우리에게 모주가 있었다면 유럽에는 뱅쇼가 있다. 유럽에서는 추운 겨울에 감기 예방을 위해 와인에 사과, 오렌지 등 각종 과일에 시나몬스틱을 넣고 끓여 알콜을 증발시켜 따뜻하게 마시는 전통이 있다. 술을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알코올 성분이 날아가 도수가 낮아지는 대신, 오히려 향미가 좋아져 맛이 배가 된다. 집에 남은 와인이 있다면 나만의 뱅쇼를 만들며 겨울을 준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좌)감홍로 우)송화백일주
모주와 뱅쇼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감홍로나 송화백일주 같은 술을 따끈한 물에 타서 따뜻한 칵테일로 마셔도 좋다. 막걸리나 와인 베이스와는 또 다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형찬 한의사 /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
김형찬 한의사는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며 느끼고 생각한 사람과 병,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동네한의학'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중입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요즘 사람들에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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